호텔신라는 매출 83%가 면세점인데, 버팀목은 호텔이었다 [기업해부사전 51화]
서울 장충동 언덕의 신라호텔은 한국에서 가장 이름난 호텔 가운데 하나다. 그 호텔을 가진 회사 호텔신라(008770)의 장부를 열면 호텔은 생각보다 작은 칸이다. 2024년 매출 3조9,475억원 가운데 3조2,819억원이 면세점에서 나왔다. 100원어치를 팔면 83원은 면세점 매대에서 나온 돈이다.
최근 호텔신라 주식이 신저가를 쓰면서 이름이 다시 오르내린다. 회사를 열어 보면 이익 칸은 매출 칸과 거꾸로다. 같은 해 면세점은 적자를 냈고, 이익은 매출의 17%밖에 안 되는 호텔·레저에서 나왔다. 회사 이름에 걸린 호텔이 실제로는 회사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호텔신라는 호텔 이름을 단 면세 유통 회사다. 면세점이 몸집을 만들고, 호텔이 이름과 이익의 바닥을 지킨다. 이 회사의 지난 40년은 호텔 안에 차린 가게가 호텔보다 커진 이야기이고, 지금은 그 가게를 스스로 줄이는 이야기다.
영빈관 자리에 세운 호텔, 그 안에 차린 가게
1973년 삼성이 호텔 사업부를 만들고 임페리얼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그해 7월 장충동의 영빈관을 인수했고, 11월 회사 이름을 신라로 바꿨다. 호텔은 1979년 3월 전관을 열었다. 나라의 손님을 맞던 자리에 지은 호텔이라는 것이 이 회사가 처음 가진 자산이다.
면세점은 7년 뒤에 붙었다.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 7월, 서울신라호텔 안에 신라면세점 서울점이 문을 열었다. 1989년에는 제주에 면세점을 냈고, 제주신라호텔은 이듬해인 1990년에 열었다. 서울에서는 호텔 안의 가게였던 면세점이 제주에서는 호텔보다 먼저 섰다.
회사는 1991년 3월 주식시장에 올랐다. 서울신라호텔의 객실은 464개다. 방은 건물을 새로 짓지 않으면 늘지 않지만, 면세점 매대는 공항과 바다 건너로 얼마든지 옮겨 놓을 수 있다. 호텔 매출은 방 수에서 멈추고, 면세점 매출은 매장 수만큼 늘어난다.
가게가 집보다 커졌다
2019년 호텔신라의 매출은 5조7,173억원, 영업이익은 2,959억원으로 그때까지 가장 컸다. 그 매출 가운데 5조원 이상이 면세점 몫이었다. 면세 사업만으로 연 매출 5조원을 넘긴 것은 그해가 처음이다. 호텔 회사의 매출 열에 아홉 가까이를 가게가 채웠다.
이 매출을 만든 손님은 여행객만이 아니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면세품을 사다 되파는 중국 보따리상도 큰 손님이었고, 면세점들은 이들과 단체 손님을 데려오는 여행사에 송객수수료를 줬다. 면세업계 전체가 낸 송객수수료는 2019년 1조3,170억원이었고, 2021년에는 3조8,745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불었다. 면세점 매출의 상당 부분은 손님을 데려오는 값을 치르고 산 매출이었다.
면세점은 남이 만든 화장품과 술, 향수를 사다 파는 유통이다. 시내 매장에는 손님을 데려온 대가가 붙고, 공항 매장에는 공항에 내는 임차료가 붙는다. 면세점은 팔수록 매출이 쌓이지만, 그만큼 떼어 줄 몫도 같이 쌓이는 장사다.
매출 83%의 면세점이 적자, 17%의 호텔이 흑자
2024년이 이 구조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 준다. 면세 부문은 매출 3조2,819억원에 영업손실 537억원을 냈다. 호텔·레저 부문은 매출 6,656억원에 영업이익 645억원을 냈다. 회사 전체로는 52억원 영업손실이었다. 호텔이 번 돈을 면세점이 까먹은 해였다.
2025년 매출은 4조683억원으로 3.1% 늘었고, 영업이익은 135억원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그해 호텔 부문은 약 7,300억원의 매출에 약 61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회사 전체 영업이익보다 호텔 한 부문의 영업이익이 네 배 넘게 컸다.
면세점이 흑자로 돌아선 뒤에도 두 사업의 체질은 다르다. 2026년 2분기 면세 부문은 7,726억원을 팔아 364억원을 남겼고, 호텔·레저 부문은 1,992억원을 팔아 247억원을 남겼다. 100원을 팔 때 면세점에는 4.7원, 호텔에는 12.4원이 남는다. 호텔은 매출의 20.5%로 영업이익의 40.4%를 냈다. 몸집은 면세점이 키우고, 체력은 호텔이 만든다.
인천공항 매장 4,293억원어치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2025년 9월 호텔신라는 인천공항 면세점 DF1 구역의 영업을 그만두겠다고 공시했다. 향수·화장품·주류·담배를 파는 구역으로, 한 해 매출이 4,293억원이었다. 회사 매출의 10.9%다. 회사는 영업을 이어 가기에는 손실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고, 영업은 2026년 3월 17일 멈췄다. 마카오 국제공항 면세점도 2025년 11월 운영을 끝내기로 했다. 매출 열 가운데 하나를 회사가 스스로 잘라 냈다.
결과는 바로 장부에 찍혔다. 2026년 2분기 면세 부문 매출은 9.1% 줄었는데 영업이익은 364억원으로 흑자가 됐다. 공항점 매출이 17.4% 줄어드는 사이 시내 면세점은 2% 늘었고, 회사 전체 영업이익은 611억원이었다. 덜 팔고 더 남겼다. 매출 크기를 키우던 면세점이 남는 매대만 고르는 면세점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호텔은 이제 남의 건물에 이름을 건다
호텔 쪽도 방식을 바꾸고 있다. 회사는 호텔 사업에서 위탁운영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건물은 남이 짓고, 호텔신라는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를 대고 그 대가를 받는 방식이다. 2026년 2월 중국 시안에 신라모노그램을, 4월 중국 옌청에 신라스테이를 열었고, 베트남 하노이에는 319실 규모 신라모노그램 개관을 앞두고 있다. 방 수에서 멈추던 호텔 매출을 남의 건물로 넘겨 늘리는 방법이다.
그래도 무게중심은 아직 면세점에 있다. 2026년 상반기 매출 2조253억원 가운데 면세 부문이 1조6,572억원, 호텔·레저가 3,681억원이다. 면세점이 열에 여덟을 넘는다. 상반기 영업이익 816억원 가운데 호텔·레저 몫은 329억원이다. 이 회사의 매출은 면세점에서 읽고, 이익의 바닥은 호텔에서 읽어야 한다.
다시 장충동 언덕으로 가 보자. 영빈관 자리에 선 객실 464개의 그 호텔은 1979년부터 같은 자리에 있다. 그사이 호텔 안의 가게는 공항과 바다 건너로 뻗어 회사 매출의 대부분이 됐고, 이제는 남는 매대만 남기며 몸집을 줄이고 있다. 47년 동안 이 회사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매출의 주인공이 아니라 간판에 걸린 호텔의 이름이고, 회사는 이제 그 이름을 남의 건물에 빌려주기 시작했다.
근거 자료: 설립·영빈관 인수·상호 변경·개관·면세점 개점·상장 연혁과 객실 수, 2019년 매출·영업이익과 면세 매출 5조원, 면세업계 송객수수료(관세청 자료), 2024년 연결·부문별 실적, 2025년 연결 실적과 위탁운영 확대 방침, 2025년 호텔 부문 매출·영업이익, 인천공항 DF1 영업정지 공시, 2026년 1분기 부문별 실적과 마카오 공항점 종료, 2026년 2분기 부문별 실적, 2026년 2분기 호텔 부문 비중과 하노이 위탁운영, 2026년 상반기 연결 실적과 해외 호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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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1일까지 확인한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사업 구조 해설입니다. 실적과 연혁은 회사 공시를 인용한 보도와 공개 백과 기준이고, 2026년 상반기 부문별 매출은 1·2분기 발표치를 더한 값이며, 송객수수료는 면세업계 전체 수치입니다. 구조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해석입니다.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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